한국계 최초 NFL 선수
두 번의 좌절 끝 이룬 꿈
손흥민과 특별한 우정

지난 2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애리조나 카디덜스를 상대로 애틀랜타 팰컨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애틀랜타는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필드골(3점)을 터뜨리며 20-19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는데, 팀의 승리를 견인한 인물에 대해 한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가 바로 한국계 키커 구영회이기 때문인데, 그는 두번의 터치다운 득점(6점)에 이은 추가 득점 기회에서도 침착하게 골대 안쪽으로 차 넣으며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 같은 구영회의 활약에 힘입어 애틀랜타는 4연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구영회가 NFL에 활동중인 최초의 한국계 선수임과 동시에 키커 포지션으로는 초특급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 과연 그가 미식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팀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등에 대해 알아보자.
영어도 모르고 떠난 미국
미식축구로 친구 사겨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난 구영회는 12세이던 2006년 한국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영어를 할 줄 몰랐던 구영회가 미국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당시 그는 친구들에게 ‘주말에 뭐해?’라는 문장조차 말할 줄 몰랐는데, 그런 그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스포츠라는 공통언어가 존재했다.
당초 한국에서 축구를 했던 구영회에게 공을 잘 다루는 것이 큰 도움이 됐는데, 현지 친구들 사이에서 그가 공을 잘 찬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이에 친구들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 종목인 미식축구를 소개했고, 미국에 오기 전 전혀 알지 못했던 미식축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다만 미식축구계에는 큰 성과를 얻은 동양인이 없었다. 이 같은 환경은 인종차별로 이어졌으나 구영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의견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면 무시하기로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먹었다”며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마치 ‘방탄조끼’를 입을 것처럼 각오를 다졌다. 다이어트 할 때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 것처럼 말 역시 어떤 말을 듣고 거를지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인종과 상관없이 재능이 있다면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공을 차는 것에는 동양인, 백인, 흑인 등 같은 인종은 상관없다. 그냥 잘 찼는지 아닌지만 중요한 지표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식축구계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모두의 출신은 달라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변함없다. 물론 구영회가 미식축구에 발을 내디뎠을 당시에는 동양인 선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 잘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몰두했다.
NFL의 높은 진입 장벽
4주 만에 잘리기도

하지만 구영회가 NFL에서 스타 반열에 오르기까지 순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졸업을 했지만, 어떤 프로팀도 그에게 입단 제의를 하지 않았던 것. 우여곡절 끝 2017년에 입단하게 된 로스앤젤레스 차저스에서 한국계 최초로 NFL무대를 밟게 됐으나, 부진을 이유로 한 달 만에 방출했다.
그럼에도 구영회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 그는 “이런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한 번 잘하고 끝이 아니라 매일 뭔가를 이루어 내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게 된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방출된 후 돈이 부족해 부모님 집으로 가 살기도 했는데, 구영회는 계속해서 팀을 찾아 테스트에 참가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갔다.

이 같은 노력은 2019년 10월 애틀랜타에 영입함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기회에 감사함을 배운 구영회는 첫 시즌부터 23개의 필드골을 성공하는 등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2021시즌에는 성공률 94.9%에 이르는 필드골을 달성하며 한국계 최초 올스타전에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꾸준한 성장을 보여준 구영회를 본 애틀랜타는 지난해 초 5년 연장 총액 약 337억 원의 계약을 맺었는데, 이로써 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키커가 된 것이다.
NFL 손흥민 별명 얻어
유니폼 선물 받기도


한편 한국 팬들은 구영회를 보고 ‘NFL 손흥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훗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과 등 번호(7번)가 같을 뿐 아니라 날카로운 오른발 킥이 주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애틀랜타도 알았던 것인지 2년 전 소속팀이 마련한 화상 대화를 통해 첫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어 손흥민은 구영회에게 자신의 친필 싸인이 담긴 유니폼을 보내는 등 훈훈한 우정을 이어가기도 했다.